릿쿄대학과 윤동주立教大学

1. 윤동주에 대해

윤동주의 생애

릿쿄대학 재학 중 여름 방학에 귀향했을 때의 사진 (1942년 8월 4일)

윤동주(尹東柱)는 1917년, 북간도(현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명동촌에서 태어났습니다. 명동촌은 민족 교육과 기독교 교육이 활발했던 곳이며, 윤동주 일가도 기독교를 신앙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윤동주는 기독교계인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용정), 숭실중학교(평양)에서 공부했으나, 날로 강해지는 ‘신사 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중학교를 자퇴했습니다. 이후 광명학원 중학교(용정)를 거쳐, 1938년 4월 기독교 계열의 연희전문학교 문과(서울)에 입학했습니다.

1941년 12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이듬해 3월 일본으로 건너가 4월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학과(선과)에 입학했습니다. 여름 방학을 맞아 귀향했다가 10월에 도시샤대학 문학부 문화학과 영어영문학 전공(선과)으로 편입했습니다. 1943년 7월, 도시샤대학 재학 중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945년2월 16일, 수감지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습니다.

윤동주의 시 세계

윤동주가 일본에 머물렀던 3년 동안 쓴 시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아래 다섯 편뿐입니다.

「흰 그림자」(4월 14일)
「사랑스런 추억」(5월 13일)
「흐르는 거리」(5월 12일)
「쉽게 씌어진 시」(6월 3일)
「봄」

이 시들은 모두 릿쿄대학 편지지에 쓰여 있으며, 윤동주의 도쿄 시절을 담고 있는 시이자 확인 가능한 마지막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다섯 편의 시는 윤동주가 서울의 절친한 친구 강처중에게 보낸 편지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시와 편지 모두 한글로 쓰여 있었기에 강처중은 안전을 고려하여 편지는 버리고 시만 남겨 두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다섯 편 중 가장 나중에 쓰인 「봄」은 시의 끝 부분이 유실되었습니다.

시인 윤동주 약력

1917년 당시 중화민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출생.
1925년 명동초등학교 입학.
1931년 명동초등학교 졸업.
1932년 길림성 용정의 기독교계 은진중학교 입학.
1935년 평양의 숭실중학교(기독교계)로 전학.
1936년 용정의 광명중학교로 전학.
1938년 용정의 광명중학교로 전학.
1941년12월 동교 졸업.
1942년4월 릿쿄(立教)대학 문학부 영문학과 선과에 입학.
1942년10월 도시샤(同志社)대학 문학부 문화학과 영어영문학 전공 으로 편입.
1943년7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됨.
1945년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2. 윤동주 기념비

기념비 건립 취지(릿쿄대학 총장 니시하라 렌타)
본교와 깊은 인연이 있는 한국의 국민 시인 윤동주(尹東柱)의 기념비를 이케부쿠로 캠퍼스에 설치하였습니다.

윤동주는 1945년 서거 후 한국에서 서정시인, 민족시인, 저항시인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은 한국 뿐 아니라 일본, 중국,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모교인 한국 연세대학교와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는 시를 통해 염원했던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윤동주의 뜻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기념 시설과 비석을 설치했습니다.

지금까지 본교도 릿쿄학원(立教学院)전시관에서 윤동주의 작품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해왔고, 한국 유학생을 지급 대상으로 하는 「윤동주 국제교류 장학금」을 제도화하는 등 관련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2024년 4월에 총장에 재취임한 후 몇 가지 계기가 맞물려 윤동주 기념비 설치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먼저 2024년 5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화여자대학교의 장윤재(張允載)교수와의 대화에서, 과거 이화여자대학교와 연세대학교(전신인 연희전문학교)가 채플 (현 이화여자대학교 채플)을 함께 사용했던 시기가 있었고, 윤동주도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예배에 참석했다는 일화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윤동주가 릿쿄대학에서 공부한 사실은 이화여자대와 연세대의 많은 관계자들이 잘 알고 있고, 릿쿄에 대한 친근감과 교육 이념에 대한 공감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윤동주의 존재를 매개로 국경을 넘는 대학 간 유대관계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다시금 실감하는 계기였습니다.

또 하나는, 도시샤대학과의 협력 협정 체결입니다. 도시샤대학과의 협정은 상호 교육 연구의 고도화를 위해 양측이 협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그 전제에는 건학 정신과 교육 이념을 둘러싼 상호 이해와 존중이 있습니다. 윤동주가 릿쿄에서 배운 것을 기억하고 이를 학생과 사회에 널리 전하는 것은 세계의 영구적인 평화에 대한 염원, 일본의 전쟁 역사에 대한 성찰, 미래지향적인 동아시아 지역 우호 관계 구축을 위한 자세 표명 등 많은 관점에서 일본 대학으로서 본교가 도시사와 함께 국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의미이자 학생에 대한 교육적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윤동주가 릿쿄 대학 입학을 적극적으로 희망했던 점과 윤동주의 시인으로서의 재능이 릿쿄 시절 더욱 풍부하게 다듬어졌다는 점을 입증하려는 논고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2024년 본교 창립 150주년 기념식에서도 성공회대학 이재정(李在禎) 전 총장께서 축사에서 릿쿄와 윤동주의 관계에 언급하셨습니다. 또한 2025년 1월에는 윤동주 서거 80주년(2025년)이라는 의미 있는 해를 맞아 윤동주의 정신을 기리는 연세대학교 학생·교직원이 본교를 방문하여 많은 릿쿄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케부쿠로 캠퍼스에 윤동주의 정신을 표상하는 기념비를 세워, 국경을 넘는 교류가 더욱 더 활발해질 것을 염원하며, 이는 본교가 Global Liberal Arts & Sciences 교육을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사상적 토대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릿쿄 대학의 총의로서, 여기에 윤동주의 기념비를 건립하는 것을 진심으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2025년 10월 11일
릿쿄대학 총장 니시하라 렌타

윤동주와 릿쿄대학의 관계에 대하여(기념비 비문 내용에서)
윤동주는 1917년 당시 중화민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나, 고향의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전학했으나 중퇴하고 다시 고향의 광명중학교로 옮겨 졸업했습니다. 이후 서울의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문과에 입학하여 1941년 12월에 졸업했습니다. 그 이듬해인 1942년 3월 일본으로 건너와, 같은 해 4월 릿쿄대학 문학부 영문학과 선과(選科)에 입학했습니다. 같은 해 여름 방학 중 용정의 본가에 잠시 귀향했으나,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 때는 도시샤대학 문학부 문화학과 영어영문학 전공으로 편입하여 릿쿄대학은 퇴학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도시샤대학 재학 중이던 1943년 7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1945년 2월 옥사했습니다.

윤동주의 본교 재학 기간은 짧았으나, 릿쿄 재학 중에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를 썼다. 이 비석에 새겨진 『쉽게 씌어진 시』를 비롯하여 윤동주가 남긴 수많은 시들은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쉽게 씌어진 시』를 포함한 다섯 편의 시는 백합 문양이 새겨진 릿쿄대학 편지지에 쓰여졌으며, 이 원본 전체는 연세대학교 윤동주 기념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선배 윤동주의 시와 삶에 접하고, 역사를 배우며, 다가올 시대를 열어 나가기를 바라며, 여기에 비석을 건립합니다.


2025년 10월 11일
릿쿄대학

기념비 소재지와 부탁

  • 소재지 : 도쿄도 도시마구 니시이케부쿠로 3-34-1 릿쿄대학 이케부쿠로 캠퍼스 내
  • 이케부쿠로 캠퍼스로의 접근 방법은 여기를 참조하십시오.
  • 주차장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십시오.

3. 윤동주 기념비 설치 기념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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